옛날 어느 양가의 나이 많은 처녀가 홀로 학 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처녀는 매우 부지런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므로, 단 하루도 해야 할 일을 거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처녀는 새벽같이 우물에 물을 길러갔습니다. 처녀가 물을 길어 올리는 사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물을 뜨던 처녀는 표주박에 햇빛이 비치자 그 물을 마셔버렸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물을 마신 뒤부터 처녀는 산기를 보였고, 14달 만에 잘생긴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울 수 없었던 처녀는, 아이를 깊은 산 속 바위 밑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처녀는 아이를 버린 지 사흘째 되던 날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갔고, 죽어있어야 할 아이가 살아있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처녀는 혹시 누군가가 아이를 보살펴주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곁에 숨어 하룻밤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밤이 되자 어디선가 날아온 백학이 아이의 입에 빨간 열매 세알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어미와 같은 손길로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백학의 보살핌은 그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고, 처녀는 혹시 범상치 않은 아이를 버린 죄를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아이를 다시 데려와 보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는 마을 사람들의 천대와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조롱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났고, 어느 새 5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세가 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인 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왜 자신은 아버지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달리 거짓말을 할 도리가 없었던 처녀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고, 아이는 어머니를 위해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며 집을 떠났습니다.

그 뒤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고, 마침내 장성한 아이가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하고, 굴산사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그 뒤 학이 아이를 기른 바위는 ‘학 바위’라 불리게 되었고, 장성한 아이는 ‘범일국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